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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벽화 |
아이덴티티 디자이너란 직업은 반세기 정도의 기간 동안에 독자적인 훈련을 통해서 생겨난, 비교적 연륜이 짧은 직업이다.
그러나 상징은 인간이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속에서 바위 위에 그림을 새기고 색칠을 하던 3만년 전, 즉 인류의 시작 이래로 존재해 왔다. 초기의 인류는 이 상징적 그림을 그리고 색칠함으로써 일상 생활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기록했다.
오늘날, 상징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으며, 일상 생활에서 거의 무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언어를 쓰지 않고 일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신호등, 레스토랑, 호텔, 공항 등에서 쓰이는 상징들은 언어를 초월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시각 이미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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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머천트 트레이드 심벌(merchant trade symbol, 상인조합의 상징의 예 |
CI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이용되기 시작했는지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19세기의 유럽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머천트 트레이드 심벌(merchant trade symbol, 상인조합의 상징)이 현대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심벌들은 상인 조합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들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다른 것들과 구별짓기 위해 사용하였다. 이러한 시각 상징물은 봉투에서 간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이용되었다.
그러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사업가들이 좋은 디자인과 매출 증가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된 후에야 하나의 전문분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이 밀어닥치면서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라는 직업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의 회사는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며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울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몇몇 회사들이 뛰어난 마케팅전략과 함께 새로 디자인한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바로 다음 수십년간 매우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 디자이너들은 CI 작업을 의뢰받기는 했지만 그 회사의 결정권자 또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존재하는 소비자 환경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다.
이 직업이 확립된 초기에는 극소수의 디자이너들만이 최고 경영진과 직접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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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스쿨의 깨끗한 선이 조합된 그림 |
1930년대 후반, 바우하우스 스쿨의 깨끗한 선이 서류, 포장, 매체 그리고 모든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기차, 패션 스타일 심지어 토스터에까지도 유선형이 적용되었다. 이 새로운 유선형 상품의 사조를 상표로 삼으려는 시도까지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산업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성장한 것은 세계대전 후였다. 전쟁이 끝나자, 디자인을 가르치는 최고수준의 학교에서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 현장으로 속속 들어갔다.
프랑스 이민자 출신인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는 인터내셔널 하베스터의 마크를, 폴 랜드(Paul Land)는 IBM의 마크를, 모튼 골드숄(Morton Goldsholl)은 모토롤라의 M자를 만들어냈다.
이 시기는 산업 디자인분야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 전까지 그래픽은 기본적으로 장식으로만 이용되고 있었고, 디자인과 시장에서의 성공 사이의 관계에 대해선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이제서야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하나의 마케팅 및 세일즈 도구로서 사업가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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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R.J 레이놀즈 사가 카멜 담배의 포장 |
1950년대와 60년대에 이루어진 다국적 기업의 성장과 기업 합병의 증가로 말미암아 많은 상표들이 재디자인되었다. 포츈 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많은 기업이 예전의 상표를 새로 디자인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업의 크기와 전망을 훨씬 더 잘 나타낼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러나 새로운 디자인이 항상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1958년 R.J 레이놀즈 사가 카멜 담배의 포장을 바꾸기로 결정했을 때의 일이다. 기존의 포장에 있던 세 개의 피라미드 가운데 두 개를 없애고 디자인을 현대화했다.
그런데 제1단계(피라미드 한 개를 없애고 글자체를 바꾸었다)가 끝난 직후 판매량이 급감했고, 고객으로부터 항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 즉시 예전의 디자인이 되살아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960년대 초와 중반 동안 디자인 시스템은 <마법의 개념 (magic concept)>이 되었다. 당시 시대 분위기가 일관성, 동일성 그리고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기 흐르는 미니 스커트에서 CI 매뉴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간결했다. 이렇게 상징이나 활자체로 응용 가능한 것은 간결하게 변했다.
Chermayeff & Geismar 사가 체이스맨하탄 은행의 추상적인 상징을 디자인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간단하고도 우아했다. 이 디자인은 60년대와 그 후에 나올 다른 많은 상징의 모델이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기업들의 상징화 작업이 대폭 줄어들었다. 수백만 달러를 들여서 새로운 CI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운 시기였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있었고, 또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그래픽에 투자하느니 사회 프로그램에 돈을 쓰면서 자세를 낮추었다.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디자인 관련 교육 과정의 통합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새로운 교육 과정은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미학, 행동 심리학 그리고 그래픽 아트는 물론 마케팅이 연결된 것이어야 한다. 앞으로는 이 모든 분야에 감각이 발달한 디자이너라야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디자이너는 각종 상업 도구에 철저하게 익숙해야 한다. 상징과 인쇄술을 이용하는 언어를 창조해내려면 디자이너는 각종 수단, 재료 그리고 이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어떻게 이용하고 다루는지도 알아야만 한다.